실직은 어느 날 갑자기 통보되는 게 아니다.
회사가 경영이 악화되는 순간이 오거나, 조직이 갑작스럽게 직무 변경이나 구조 조정을 하거나, 자신이 속한 사업부가 없어지거나 다양한 사전 암시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 회사로부터 사직을 권고받거나 혹은 대기발령, 휴업명령과 같은 인사 조치가 행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엔 그냥 잠깐 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 주가 지나며, 점점 조직에서 나의 흔적이 사라지는 걸 느끼게 됐다. 원하지 않았고 정말 다시 복직하고 싶었지만, 그제서야 나는 실직이라는 현실에 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해고 통보 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들.
이 글은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떠날 수도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 조치를 안내하는 체크리스트가 되었으면 한다.
1. 퇴사 전 회사 계정, 메일, 업무기록 백업은 필수
회사를 나가게 되면 가장 먼저 잃는 건 접근권한이다.
퇴직이 확정된 다음에는 계정 접근이 끊기기 전에 내가 했던 모든 기록을 퇴사 전 백업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 체크리스트
- 회사 메일 내 프로젝트 자료, 스케줄: PDF 저장
- 성과 요약 파일 (직무, 기여도, 리뷰 등)
- 메신저 대화 중 주요 업무 기록 캡처
- 회사 인트라넷에 업로드했던 문서 사본
이 모든 것들은 추후 실업급여 신청이나 부당해고 소송 시 '내가 실제로 이 업무를 수행했다'는 증거가 된다.
다만, 주의해야할 것들은 회사의 모든 기록물은 회사 내부 규칙에서 이를 외부 반출을 금하고 있을 수도 있다. 회사의 동의 없이 백업할 경우, 이후 법적인 문제도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본인의 성과 요약 파일이나 본인의 주 업무 내용을 따로 정리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 실직 대비용 필수 인사 서류 정리하기
해고, 휴업 또는 대기발령과 같은 인사 조치 후, 회사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거나 자신의 모든 인트라넷 계정이나 이메일 등 접속 권한이 사라졌을 때, HR 에게 인사 서류를 요청하여도 제때에 받거나 제공이 거부될 수도 있다. 퇴사 전에 모든 인사 서류를 미리 요청하고 보관해야 한다.
✔ 필수 문서
- 근로계약서
- 연봉 인상 내역 (계약 변경 동의서 등)
-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
- 직전 12개월 인센티브, 상여금 명세서
- 잔여 연차 확인서
- 대기발령서·휴업명령서 (해당 시)
이 서류들은 실업급여 수급뿐 아니라, 이후 휴업수당 정산, 퇴직금 정산, 임금체불 소송, 법적 대응 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대기발령, 권고사직 등 해고 관련 통보는 꼭 기록하자
요즘 회사는 '해고'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발령서, 휴업명령서, 구두 권고사직 등은 모두 실질적 해고에 준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
✔ 이렇게 기록하자
- 통보 메일, 메시지: 스크린샷 및 PDF 저장
- HR과의 통화 내용: 문자나 통화 직후 메모 (에이닷 앱을 사용하면 통화 내용 저장 및 내용 기록 가능)
- 회의나 면담 중 해고 암시: 가능하면 녹음
회사나 HR 에서 구두로 통보하거나 이야기한 내용도 소송이나 구제신청시 효력이 있다.
전 직장 직원이 직속상사로부터 홧김에 "그렇게 일하려면 아예 출근을 하지마" 라는 말을 듣고, 7 일간 무단결근하였고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그 직원을 해고하였다. 하지만, 그 직원은 해고 이후 3 개월이 채 지나기전에 부당해고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 판결은 직속상사의 구두로 이루어진 부당해고로 복직 지시가 내려졌다. 전 직장은 지난 3 개월의 급여를 지급하고 해고에 따로 합의금을 직원에게 제시하였다.
이 경우는 직속상사가 홧김에 한 말을 노동위원회에서 스스로 인정하였기에 가능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 회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고 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자료는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4. 실업급여 받기 위한 자격 확인
실업급여는 자발적 퇴사는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해고나 권고사직이라면, 이후 회사가 '자발적 퇴사'라고 잘못 처리하더라도 이의제기로 수급 가능하다.
실업급여는 퇴사일 18개월 이전 180 일 이상 근무를 해야만 신청 가능하니, 본인이 실업급여의 대상이 되는 지 미리 확인해보자.
✔ 해야 할 일
- 고용산재토탈서비스 홈페이지 (https://total.comwel.or.kr) 에서 가입 이력 확인
- 해당 홈페이지에서 '개인'으로 접속 -> 고용・산재보험 자격 이력 내역서 클릭 -> 보험구분 '고용', 조회구분 '상용' 클릭
5. 건강보험, 국민연금 체크
건강보험의 경우, 퇴사 후 자동으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나, 본인의 소득, 재산, 차량 유무에 따라 보험료가 대폭 오를 수 있다. 퇴사 이후 건강보험료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확인해보아야 한다.
✔ 확인해야 할 것
-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전환 시 예상보험료
- 건강보험 임의계속가입 여부 (지역가입자 보험료가 직장가입자 보험료보다 많이 높을 경우)
- 국민연금 납부유예 신청 가능 여부
6. 노무사·변호사의 조언 받기
예고없이 휴업을 가장한 해고 통보에 나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괴로워서 어떻게 회사에 대응을 해야할 지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총 4 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2 명의 노무법무법인 변호사와 2 명의 노무사에게 나의 사례를 상담하고 조언을 구했다. 아무리 블로그나 관련 내용들을 웹에서 검색한다 한들 모든 사례들이 나의 경우와 동일하지 않으며, 내가 노무사나 법조인이 아니기에 관련 노동법, 근로기준법, 수많은 판례와 행정명령, 노동위원회 판결들을 내 경우에 알맞게 적용해서 회사에 대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 관련 일정 시간 무료 상담을 해주는 노무사, 변호사분들도 많으니 검색해서 간략한 상담을 받아도 좋고, 네이버 엑스퍼트들을 통해서 저렴한 가격에 상담을 받을수도 있으니,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마무리
실직은 단순히 회사를 떠나는 문제가 아니다. 법적으로,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긴 여정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사로부터 아직 해고 통보를 받지 않았다하더라도, 닥쳐올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하나하나 조금씩 미리 준비해놓아야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두려웠고, 처음엔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퇴사' 라는 끝에 이르러서야 허겁지겁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다보니,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 다음 글에서는 회사가 해고라는 단어 없이 이별을 제안할 때, 내가 지킬 수 있었던 권리와 실제 대응법을 공유해보려 한다. 회사는 정말로 나를 해고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좋게 마무리하자”는 말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와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업에 대해,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 내가 받은 휴업 명령, 과연 정당한 인사 조치일까? 확인하고 싶다면 ;
[회사와의 이별, 법으로 지키는 나의 권리] - 휴업 명령서가 날아왔다 – 해고는 아니라면서 왜 나만 쉬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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