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꼭 써야 하나요? – 사직서 강요시, 법적 기준과 대응 방법
어느 날 갑자기 상사나 HR 담당자가 조용히 부른다. “우리, 좋게 마무리하자”는 말과 함께, 책상 위엔 ‘사직서 양식’이 놓여 있다.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속이 하얘지며 당황하게 된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 자리에서 서명하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정말로, 회사의 요구대로 이 문서를 써야만 하는 걸까? 거절하면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기는 걸까?
이 글에서는 사직서 작성을 강요받았을 때의 대응 방법, 법적 효력, 실업급여 수급 여부, 그리고 실제 대응사례를 바탕으로 내가 지킬 수 있는 나의 권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았다.
1. 사직서 강요, 거절할 수 있을까?
사직서는 자발적인으로 '퇴사’ 의사를 스스로 밝히는 공식 문서다.
근무 중 어떠한 징계를 받은 적이 없고, 인사고과 점수도 높았고, 본인이 이직, 혹은 다른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자의로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권고사직 제의는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며, 이를 거절한 것을 이유로 취해지는 회사의 인사 조치는 부당할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바대로 근로기준법 제 23조에 의해 정당한 이유없는 퇴사 권고는 부당 해고에 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제로 퇴사 관련 문서를 작성하도록 압박하거나, 분위기를 통해 이를 작성하게 만드는 것 또한 부당한 조치이며 거절해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근로자가 퇴사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회사는 사직서를 강요하거나 서명을 요구할 수 없다.
- 상사가 "스스로 정리하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 HR이 구두로 사직서를 내라고 종용한다
-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퇴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처럼 언급한다
- 대기발령・휴업 등의 인사조치 후 퇴사 합의를 요구한다
위와 같은 방식들은 모두 자발성이 결여된 사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정당한 해고 사유 없이는 불법이다.
2. 사직서를 쓰면 어떤 불이익이 생기나?
많은 이들이 어찌되었든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이니 '일단 쓰고 나가자'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후에 다음과 같은 법적·경제적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
- 실업급여를 못 받을 수 있다
- 고용보험법 제58조는 자발적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제한한다.
- 사직서는 ‘자진 퇴사’의 대표적인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 회사가 사실상 해고를 종용한 것이라도, 서면상 자발적 퇴사로 처리되면 수급이 어려워진다.
- 부당해고 구제신청 자체가 어렵다
- 사직서를 쓴 경우, ‘내가 스스로 퇴사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 그 뒤에 법적으로 "회사가 강요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역전된 입증 책임이 생긴다.
- 복직, 위로금 등 금전적 배상 청구도 매우 어렵다.
3. 실제 사례: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퇴직 위로금을 제안하며 사직을 권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직무가 없어졌고, 조직 개편이 있었으며, 너 하나만 빠지면 조직은 원활히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퇴사의사가 없습니다. 저의 직무가 없어졌다는 사측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며, 회사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 후, 회사는 대기발령과 휴업명령이라는 조치를 이어갔지만, 나는 권고사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직서 또한 작성하지 않았으며, 회사와 최종 협의에 이르기전까지는 퇴사하지 않겠다는 나의 입장을 문서로 명확히 남겼다.
또한 LinkedIn 이나 다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지도 않았고, 헤드헌터들에게도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다음 직장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회사에게는 내가 퇴사를 받아들이거나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고 나와의 지리한 싸움에서 어느 정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끔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4. 사직서 강요,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될까?
잊지 말자. 법에서는 엄격히 해고를 제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 등의 제한)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또는 기타 불이익을 줄 수 없다.
또한,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퇴사 합의 문서 작성을 거부한 것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 가능하다.
근로기준법 제 76조 2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된다.
→ 사직서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했다고 해서 대기발령·직무배제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한 실제 판례도 있기에 회사의 특수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법은 근로자의 편이다.
대법원 2003다30260 판결 (회사 책임의 입증 부담)
대법원은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그 의사가 자발적이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해고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용자가 반복적으로 퇴사를 종용하거나 압박을 가해 사직서를 제출하게 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자발적 사직이 아니라 강요된 해고로 본다고 판단했습니다.즉, 사직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실업급여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사직 당시의 정황(압박, 대기발령, 직무배제 등)에 따라 법적으로 부당해고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5. 사직서에 이런 문구는 조심!
이후, 아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다시 업무로 복귀할 수 있다면 최고의 결과이겠으나, 어쩔수없이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퇴직 권고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직서를 작성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다. 당장 이직할 다른 직장이 없고 실업급여를 수급해야 한다면, 최종 사직서 작성시 주의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퇴사함을 동의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퇴사합니다."
"회사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퇴직 위로금 수령함."
"회사에 어떠한 법적 요구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문장은 향후 실업급여나 법적 구제에서 매우 불리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절대로 무심코 서명하지 말고, 내용을 꼼꼼히 읽은 뒤 조정 요구하거나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후 제출해야 한다. 아래와 같은 예시로, 반드시 비자발적인 퇴사임을 밝혀야 한다.
- 경영 악화를 사유로 한 인원감축으로 회사의 권유에 의해 사직함
- 사업부 폐지로 인한 권고 사직
또한, 회사에서 퇴직합의금을 제시한 경우 이에 대한 합의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반드시 사직서에 퇴직합의금의 내용과 지급 기일을 명시하여야 하고,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퇴사 동의 및 관련 합의는 무효이며 퇴직일로부터 복직일까지의 임금 지급 및 복직시킨다' 라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가끔, 사직서를 받기 위해 위로금을 구두로만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반드시 별도의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사직서에 권고사직에 따른 회사와의 합의 내용을 추가해두는 것이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으며, 추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로 제소가능하며 복직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
사직서는 단순히 퇴직을 밝히는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누가 퇴사의 책임을 지는가를 결정하는 문서다. 자발적이지 않은 퇴사 사유일 경우, 회사에선 좋은 말로 포장하겠지만, 결국은 회사가 해고의 법적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다. 회사에서 사직서를 요청한다면, 절대 서두르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 다음 글은 퇴직위로금과 실업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퇴사를 권유받고 일정 금액의 위로금과 퇴직금을 수령하게 되면, 나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는지, 그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 권고 사직을 거부한 후 할 수 있는 대응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