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을 거절한 후, 내가 실제로 한 대응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해고보다는 권고사직이 낫다고. 스스로 나간 모양새를 갖추는 게 차라리 다음 직장을 구하기도 유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실제 그 자리에 놓인 사람이라면, 그 조언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곧 깨닫게 된다.
10년 넘게 성실하게 일해온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네 자리는 없어졌어' 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해고라는 단어는 분명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알아서 나가라’ 는 메시지였다.
회사는 말한다. 직무가 사라졌다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나를 내보내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게 아닐까?
이 글에서 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러한 회사의 조치를 어떤 방식으로 거절하고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준비했는지를 정리했다.
1. 권고사직을 거절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회사에서 '권고사직' 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당황한다.
“해고는 아니니까 감사해야 하나?”
“그래도 위로금은 준다고 하니까 받아들여야 하나?”
하지만, 권고사직은 본질적으로 ‘자발적으로 퇴사한다’는 서류에 본인이 서명하는 행위다. 즉, 회사는 해고의 책임을 피하고, 근로자는 실업급여나 법적 보호의 기회를 일부 잃게 된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결정을 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못 받거나, 부당해고를 주장할 법적 근거조차 없게 된다.
그럼 회사가 권고사직을 제안하면 직원은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하는걸까?
회사가 직원에게 사직을 권고할 경우,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강요나 압박이 있으면 안되고 또한 직원이 권고사직을 거부했다고 하여 직원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이는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도 있다.
회사는 나에게 해고를 통보하였지만, 이는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음을 회사가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회사는 퇴직위로금을 제시하며 권고사직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로 압박이 시작되었다. 직원인 나를 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고 회사로부터 업무적으로 단절되었다고 느끼게 하며, 모든 정보를 차단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2 주 대기발령, 그리고 휴업 조치였다. 나의 경우처럼 많은 회사들이 권고사직을 거절한 직원에게 직무 배제, 출근 금지, 대기 발령이나 인력풀 이동, 자리 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을 시도한다. 하지만, 회사들은 이를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 직원을 전환 배치할 수 있도록 내부 업무 조정, 조직 재정비, 인력 조정을 위한 시간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2. 권고 사직을 바로 거절했다
“방금까지 하던 제 직무가 왜 갑자기 없어졌다는건가요?"
"부당해고 아닌가요?"
"퇴직 위로금 필요없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이유로 저를 내보내려고 하는건가요?"
"저는 일하고 싶어요. 퇴사 의사가 없습니다."
그 후 회사는 서면으로 대기발령을 통지했고, 나는 그다음날 바로 출근 금지와 자택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기록’이었다.
회사로부터 받은 모든 문서, 메일, 문자, 메신저 내용을 캡처하고 저장했다. 대기발령 통지서, 휴업 명령서, HR 과의 대화등도 모두 녹음하고 대화내용을 PDF로 백업해두었다. 전화를 통한 대화 내용 녹음 시, 아이폰 사용자는 녹음을 할 경우 상대방에게 녹음을 하고 있다는 통지가 나가게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에이닷 앱을 깔고, 모든 통화가 자동 녹음, 기록되게 조치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노무사 두 명, 노동 전문 변호사 두 명에게 내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들은 모두 “당장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회사의 압박은 강했지만, 해고로 보기엔 법적 요건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세 번째로 한 일은 서면으로 입장을 전달했다.
나는 HR에게 메일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본인은 분명 APAC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들었고, 그 미팅 이전까지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직무 소멸에 대한 통보는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본인에게 권고사직을 종용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직원을 고용하려 하고 있으며, 최근 인센티브 지급 및 급여 인상등을 고려할 때 이는 회사가 심각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구두상으로 통보한 내용과 본인에게 전달한 문서 내용이 다른 것은 나중에 법적 증거를 만들기 위함인건지요? 현재 주신 내용으로는 명확히 이해하기가 힘들며, 저의 근로계약의 지속 의사가 확고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문장은 이후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시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 ‘스스로 퇴사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입장 표시’가 매우 중요하다.
3.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대응 전략
✔ ① 증거 확보
- 대기발령 통지서, 휴업 통보서
- 회사의 권고사직 제안 메일
- 출근 금지, 계정 차단, 업무배제 관련 기록
✔ ② 서면 대응
- 복직 요청서 작성
- 권고사직 거절 메일
- 불이익 조치에 대한 문제 제기 문서화
✔ ③ 부당해고 구제 신청
- 만약 해고 통보를 받았다면, 노동위원회에 3개월 이내 신청 가능
-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불이익을 받았다면, 실질적 해고로 볼 수 있음
- 구제신청 시, 본인이 업무를 지속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문서 중요
4. 노무사・변호사와 상담 결과, 나는 어떻게 판단했을까
회사 HR이 했던 말이 과연 부당한 것인지, 권고사직을 거절한 후 어떤 인사조치가 정당한지, 노무사와 변호사에게 총 10 회 이상 상담을 받았다.
- “해고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퇴사 압박은 법적 대응 대상이 될 수 있다.”
-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선 퇴사 경위 기록이 중요하다.”
- “근로자가 회사와 소통을 기록하고, 반박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무 전문가의 조언 없이는 나도 감정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너무나 억울했고 나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한 회사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상담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방향을 잡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아무리 검색을 한다 한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에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노동 전문 변호사나 노무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1차 상담은 무료이거나 소액, 네이버 엑스퍼트, 로톡 등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최근 스레드에서 무료 상담을 해주는 노무사나 변호사를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조언을 듣고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기 바란다.
✔ 상담 시 준비할 자료
- 인사 발령 사유 관련 문서
- 본인의 업무 이력 및 성과 요약
- 회사가 제시한 권고사직 조건(위로금, 일정 등)
팁 : 네이버 엑스퍼트 이용시, 10 분당 1 만원 ~ 3 만원 가량이다. 노무사들이나 변호사가 설명해놓은 각각의 전문 분야를 자세히 보고 상담 후기 또한 보고 고르는 것을 추천한다. 10 분을 선택해서 지불하면,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톡톡 등을 이용한 상담이 이루어지는 데, 일반적으로 전화 연결을 하는 것이 더 빠르므로 상대측에서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생각외로 10 분이 훌쩍 지나간다. 보통 설명 및 조언을 듣는데 20-30 분 이상 걸리므로, 자신의 상황을 미리 정리해놓고 본인이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옳은지, 법적으로 회사를 이길 수 있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추가 시간에 대해서는 계좌 입금 요청을 하거나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추가 결제 요청이 이루어지며, 입금이 완료되면 나머지 상담을 진행해 주는 형식으로 하고 있다.
마무리
권고사직은 감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실감과 불안함, 무기력증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힘든 감정만으로 빠르게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는 결정하면 손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근로자다. 회사가 아무리 “좋게 마무리하자”고 해도, 그 ‘좋음’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권고사직을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 다음 글에서는 회사가 해고 대신 ‘사직서 제출’을 요구할 때, 그 요구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지, 만약 강요되었다면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회사를 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방식까지 회사의 요구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제안된 권고사직, 해고와 다른 점을 알고 싶다면 ;
권고사직, 받아들여야 할까? 해고와의 차이와 실업급여 수급 기준 정리